하나님의 나라는 부유한 자들 보다는
가난한 자들을 위한 나라입니다.
지식으로, 마음으로, 물질로 부유한 자들 보다는
가난하고 겸손한 자들이 하나님의 나라에 가깝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포로된 자들을 위한 사랑입니다.
죄와 질병과 장애로 포로되고 영 육 간에
사망의 세력에 포로된 자들을 위한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눈 먼 자들을 위한 사랑입니다.
영 육 간에 눈 먼 자들을 위한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눌린 자들을 향한 사랑입니다.
히브리 민족(하비루)처럼.. 천대 받는 자들과
눌리거나, 빼앗기며, 착취당하여 마치 노예처럼
사는 자들과, 억울하고 고통당하는 자들을 향한 사랑입니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주의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눅4:18~)
하나님의 뜻과 사랑과 하나님의 나라는
강한 자들이 아니라, 약한 자들을 위한 것입니다.
부요한 자들이 아니라, 가난한 자들을 위한 것입니다.
권세자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약자들을 위한 것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기 위한 공동체입니다.
눈먼 자에게 사랑과 복음으로 하나님을 보게하고
굶주리고 가난한 자들에게 은혜를 베푸는 것입니다.
강자가 아닌 약자, 권세자가 아닌 억눌리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공의를 실현하기 위해서입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마6:33)
가정에서 눌리는 자나 고통당하는 자가 없는지
우리는 깨어 경성함으로 늘 살펴야 합니다. 공동체에서
병든자, 가난한 자, 소외된 자가 없는지 살펴야 합니다.
초대교회에서는 거의 대부분의 재정(헌금 혹 연보)을
이런 일에 사용했습니다. 지금 한국 교회는
자기조직 덩치 키우기에 교회재정의 대부분을 사용하고도
늘 부족하다며 헌금을 강요하고 선교나 구제에는 교회 재정의
4.5% 정도만 평균적으로 사용한다는 통계보고가 있습니다.
뿐 아니라 타락한 교회들에서는 하나님과는 정 반대로
소위 잘 나간다는 부자나 유명인, 권세자들을 추켜세우고
가난한 자, 병든 자를 업신여기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우리는 가정과 공동체뿐 아니라 학교나 직장에서도
이용당하는 자, 억울한 자가 없는지 살피고
그들 편에 서야 합니다. 약자의 편에 서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성령의 능력과 희생과 담대함이 필요합니다.
정치계나, 경제계, 동산, 부동산에서도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가중되는데 이를 저지하고
공평과 정의가 실현되도록 기도하고 노력해야 합니다.
"오직 공법을 물 같이, 정의를 하수 같이 흘릴찌로다"
는 아모스 5:24의 말씀이 우리 삶의 모든 영역과
사회, 국가, 지구촌으로 확대되도록 애써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는 삶입니다.